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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국으로서의 역사

수원국으로서의 한국의 ODA

수원국으로서 우리나라의 ODA 역사는 대체로 다섯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다음 표참조)

수원국으로서의 한국의 ODA
구분 주요내용
미군정기 (1945-1948) 미국의 독자적인 점령지역에 대한 원조 접수
전쟁복구.경제재건기 (1940-1960) UN의 전후복구와 미국의 [상호안전보장법]에 의한 상호 방위 및 경제 안정 중심의 무상원조 접수
개발연대 전기 (1961-1975)
  • 본격적인 경제개발을 위한 원조
  • 미 [대외원조법]에 의한 원조 및 독일, 일본 등 여타 공여국과 ADB, IDA 등 다자기구로보터의 다양한 원조 접수
  • 1975년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이 IDA의 연성 개발원조 차관지원기준(520달러)을 넘어서서 IDA 졸업
개발연대 후기 (1976-1990)
  • 1976년 미국 AID로부터의 무상원조 졸업
  • 개발원조 의존비중의 감소 및 개발차관 중심의 협력자금 도입
  • 국제개발기구 등으로부터 oerbah 개발차관, 구조조정차관등 도입
원조전환기 (1991~1999)
  • 1991년 UNDP가 우리나라를 기술원조 순공여국으로 인정
  • 1991년 본격적인 개발원조 공여 착수 (코이카 설립 등)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 이후 경제 재건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여러 선진국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았습니다. 50년대 말까지는 미국이 주요 원조국이었으며, 전후 인플레이션 억제와 재정 안정을 위한 물자원조 및 산업설비 투자가 이루어졌습니다. 1954~1960년간 한국경제는 연평균 4.9%의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동기간 중 연평균 투자율은 11.8% 였고, 그 투자재원은 무상원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외국원조의 힘이 컸습니다.

1957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한 무상원조는 1959년 말부터 유상원조로 대체되기 시작하였고, 1960년 1월 ‘외자도입촉진법’이 제정되면서 미국이외 선진국으로부터의 적극적 외자 도입이 이루어졌고 이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립과 함께 활성화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이후 1999년까지 약 127억불의 원조를 받았으며, 1995년 세계은행의 차관 졸업국이 됨으로써 사실상 수원대상국에서 졸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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